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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 20분, 캘리포니아는 ‘번질 불’부터 막는다

읽어주는 뉴스

[강원산불30년-기후재난 대형산불의 경고] ③ CAL FIRE의 초동대응
CAL FIRE Chino Unit 앨리슨 윌킨스 치프 인터뷰
동시다발 산불 땐 인명·주택 위협 큰 현장부터 자원 투입
헬기·고정익 항공기(에어탱커) 위험 단계 따라 차등 배치
ALERTCalifornia 감시정보 받아 출동 여부·투입 규모 판단
화재위험지도·방어공간·연료저감으로 불길 확산 사전 차단

◇지난해 산불로 인해 메마르고 잿빛으로 변해버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가브리엘 산맥(San Gabriel Mountains)의 산비탈이 펼쳐진 전경. 미국 로스앤젤레스=김태훈기자

산불 현장에서 모든 불을 같은 순서로 끌 수는 없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캘리포니아주 산림 및 화재 방호국(CAL FIRE)은 어느 불이 사람과 주택을 먼저 위협하는지부터 따진다. 헬기와 고정익 항공기(에어탱커)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위험한 현장을 먼저 가려내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캘리포니아주 산림 및 화재 방호국(CAL FIRE) 프라도 헬기 기지(Prado Helitack Base) 소방서 입구. 미국 =김태훈기자

■ 동시다발 산불, 우선순위가 피해를 가른다=지난 5월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치노의 CAL FIRE Chino Unit 프라도 헬기 기지. 이곳에서 만난 앨리슨 윌킨스(Alison Wilkins) 치프는 산불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으로 ‘동시다발 화재’를 꼽았다. 하나의 산불에 모든 장비와 인력을 쏟아붓는 상황보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불이 났을 때 제한된 항공기와 대원을 어떻게 나눌지가 더 큰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윌킨스 치프는 “여러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면 어느 현장에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결정해야 한다”며 “생명과 재산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사건을 우선 고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항공자원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현장이 가장 높은 필요를 갖고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CAL FIRE의 초동 대응은 단순히 신고가 들어온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화재 지점의 지형, 주변 식생, 바람 방향, 주택가와의 거리, 지상 접근 가능성, 다른 화재 발생 여부를 함께 살핀다. 같은 산불이라도 산속 깊은 곳에서 발생한 불과 주택가 방향으로 번지는 불은 대응 우선순위가 다르다. 협곡과 산악지형처럼 지상 접근이 어려운 곳은 항공전력이 먼저 필요하고, 생활권 가까이 접근한 불은 대피와 방어선 구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는 UC San Diego의 ALERTCalifornia 감시망도 연결돼 있다. 산등성이와 도시 외곽을 비추는 카메라와 AI가 연기나 이상 징후를 포착하면 위치 정보와 실시간 영상, 주변 지형 정보가 CAL FIRE로 전달된다. CAL FIRE는 이를 911 신고, 기상 상황, 통제 소각 여부, 접근성 등과 대조해 실제 출동 여부와 투입 규모를 판단한다. 대학 연구기관이 산불 징후를 먼저 찾아내고, 현장 소방조직이 이를 초동 작전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판단은 현장 지휘관의 경험에만 기대지 않는다. 산불이 난 위치와 주변 위험도, 확산 가능성, 동시 출동 상황을 종합해 제한된 자원을 배분한다. 

◇캘리포니아주 치노 프라도 헬기 기지(Chino Prado Helitack Base)의 출동 대기 중인 608번 헬리곱터. 미국 로스앤젤레스=김태훈기자

■ 항공전력은 불길을 늦추고 시간을 번다=치노 유닛에서 확인한 항공전력의 역할은 명확했다. 헬기와 고정익 항공기(에어탱커)는 산불 초동 대응의 핵심 축이다. 산악지형과 협곡, 도로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하늘이 가장 빠른 진입로가 된다. 지상 차량이 돌아가야 하는 곳도 항공전력은 곧장 접근할 수 있다.

CAL FIRE는 현장 위험 단계와 출동 수준에 따라 항공전력 투입 규모를 달리한다. 위험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헬기 중심으로 대응하고, 확산 가능성이 커지면 고정익 항공기가 함께 투입된다. 더 높은 단계에서는 복수의 헬기와 고정익 항공기가 동시에 움직인다.

산불 현장의 첫 대응은 “불이 났다”는 사실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어디에서 났고, 무엇을 위협하며, 얼마나 빠르게 번질 수 있는가 등이 출동 규모를 결정한다. 항공전력은 불을 끄는 장비이면서 동시에 시간을 버는 장치다. 헬기와 고정익 항공기가 공중에서 물과 소화제를 투하해 불길의 속도를 늦추면, 지상 대원은 그 사이 진화선과 방어선을 만든다. 항공전력이 산불을 혼자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상 작전이 들어갈 시간을 만들어주는 구조다.

자체 보유 장비만으로 모든 현장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외부 항공자원도 활용된다. 캘리포니아는 필요할 경우 민간 업체의 항공자원을 빌리고, 산불 위험 시기가 다른 지역의 자원도 투입한다. 캐나다 등 해외 항공자원이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에 들어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외부 지원은 도착까지 시간이 걸린다. 결국 첫 대응은 현장에 이미 있는 자원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서 갈린다. 윌킨스 치프는 “도움은 먼 곳에서 올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린다”며 “기존 자원을 우선순위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CAL FIRE 측면 적재함 내부에 비치된 진압 도구와 장비들. 미국 로스앤젤레스=김태훈기자

■ 위험을 지도화해야 먼저 막을 수 있다=주목할 대목은 화재위험지역 맵핑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산불 위험을 막연한 경험이나 감각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지역별 위험도를 지도화하고, 이를 건축 기준과 예방 규정, 주택 관리, 주민 안내와 연결한다.

클로이 카스티요(Chloe Castillo) 예방전문관은 화재위험지역 맵핑이 산불 예방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지역이 더 위험한지, 어떤 주택이 산림과 가까운지, 불길이 어느 경로로 이동할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예방도 가능하다. 

위험지도는 산림과 주택이 맞닿은 곳, 건조한 식생이 많은 곳, 강풍 때 불길이 빠르게 번질 수 있는 곳, 진입로가 좁아 대피와 진화가 어려운 곳을 미리 보여준다. 이 자료는 방어공간 확보, 외장재 관리, 연료 저감, 대피계획 수립으로 이어진다.

카스티요 예방전문관은 산불 위험지역의 규정과 지도가 계속 보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험을 한 번 표시해두는 데 그치지 않고, 법과 권고, 현장 점검을 통해 관리 기준을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산불 위험을 개인의 불안으로 남겨두지 않고 제도 안에서 확인하고 줄인다.

◇CAL FIRE 프라도 헬기 기지(CAL FIRE Prado Helitack Base) 야외에 모여 대기 중인 소방대원들이 산불 초동 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김태훈기자

■ 주택 거래 때도 산불 위험 확인=캘리포니아는 산불 위험을 주택 거래 과정에도 반영하고 있다. 카스티요 예방전문관은 AB 38을 언급하며, 주택 소유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방어공간과 화재 위험 요소를 확인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집이 거래될 때마다 해당 주택이 산불 위험지역에 있는지, 주변 가연물은 관리되고 있는지, 방어공간은 확보돼 있는지 점검하는 구조다. 산불 위험지역에 산다는 사실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남기지 않고, 주택과 생활공간의 안전 기준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주택 매매 시점은 산불 위험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기존 소유자가 관리해온 집 주변 환경과 새 소유자가 앞으로 유지해야 할 방어공간을 제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산불 위험을 단순히 개인의 주의에 맡기지 않고, 부동산 거래와 주택 관리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같은 제도는 산불 위험이 더 이상 산림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산과 주택이 맞닿은 지역에서는 집 자체가 불길의 다음 연료가 될 수 있다. 주택이 어디에 있고, 주변에 무엇이 쌓여 있으며, 불길이 접근했을 때 어느 방향으로 번질 수 있는지 등을 사전에 확인한다.

CAL FIRE 앨리슨 윌킨스(Alison Wilkins) 샌버나디노 부대 대대장(왼쪽)과 클로이 카스티요(Chloe Castillo) 공보관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김태훈기자

■ 강원 동해안에 던진 조언은 ‘전략 화재계획’=윌킨스 치프는 강원 동해안처럼 산림이 넓고, 강풍과 산악지형, 산림 인접 마을을 함께 안고 있는 지역에 필요한 대응을 하나로 좁히기는 어렵다고 했다. 산불은 특정 장비 하나나 한 기관의 대응만으로 막을 수 있는 재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윌킨스 치프가 강조한 것은 장비 확충보다 지역 실정에 맞춘 전략 화재계획이었다. 기상기관과 산림관리기관, 소방당국, 지방정부가 같은 위험 정보를 놓고 산불에 취약한 숲과 마을을 먼저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어느 숲의 연료를 줄이고, 어느 마을 주변에 완충지대를 만들지, 어디에 연료 차단선을 둘지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길은 행정구역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길과 능선, 계곡, 마른 연료를 따라 이동한다. 산불이 마을과 관광지, 산업시설로 번지기 전 어느 숲의 연료를 줄이고, 어느 생활권을 먼저 보호할지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윌킨스 치프는 “하나로 좁히기는 어렵다. 항상 공동의 노력”이라며 “기상기관과 다른 기관들이 함께 지역을 위한 전략적 화재계획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방 인력은 산림관리 인력의 의견을 듣고, 숲의 건강, 위험 완화, 연료 차단선, 통제화 사용 가능성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획기사는 2026년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언론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이동수기자 messi@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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