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이란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먹는 밥상에 새로운 한사람이 더 오면 모두가 자기 몫에서 한술씩 나눠줘서 함께 먹는다. 이웃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슬기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은 많다. 정을 나누고 능력과 소질을 나누고 시간을 나눈다. 나눔은 행복이라고 했다. 베푸는데서 행복감을 느끼고, 훈훈한 이웃과 함께 산다는데서 받는 사람도 행복하다.
복지의 개념이 절대빈곤층의 의식주해결에서 국민 복지향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세상에서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참 좋은 현상이다.
눈여겨 살펴보면 이기적인 경제 주체들이 다른 사람 또는 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나눔의 동기는 여러 가지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동정심에서 자발적 기부가 이루어지고, 남을 돕는다는 자부심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선행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는 의도도 있다. 자기의 지갑을 꺼내 갖고 싶은 물건을 살 때의 흐뭇함처럼 기부행위자체로부터 만족을 얻는 것, 또한 사회적 체면이 기부를 유발하고 기부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부자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나 언론에 비추어진 선명성에 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기부를 유도하는 방안으로 이런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기부참여를 증가시킨다. 어떠한 연유에서건 이웃을 돌아보고 나눔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모두가 조금씩 풍요로울 수 있는 사회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회다.
그러나 동정심이나 체면, 선명성 때문에 이뤄지는 기부활동은 한계를 갖는다. 이제 우리의 기부문화도 한단계 올라선 성숙기에 접어들었기에 나눔은 자신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의 당위적 역할이자 책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눔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감, 즉 행복대금을 지불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일상소비지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43억원을 모금했다. 도민 1인당 평균 2,800원 꼴이다.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면면을 보면 평범한 이웃들이다. 기업체가 취약한 강원도로선 거의가 개인기부자이며 소액기부자다. 나눔은 이렇듯 재력가나 명망가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나눔의 전통적 가치인 십시일반의 원리를 잘 전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쉽다면 거의가 일년에 한두 번, 연말연시 등 계기모금에 참여하는 부정기적 기부라는 점이다. 생활의 일부로서 성숙한 기부행위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소득의 일부를 매월 조금씩 나누는 정기 기부자가 늘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장에서 한달에 1,000원이고 1만원이고 그 이상, 형편 따라 자동이체 방법으로 기부하는 것이 편리하다. 한 사람의 큰 돈이 복지를 이끌지는 못한다. 시민의 크고 작은 참여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소비수요는 가진 자, 못가진 자를 가리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눔의 문화를 한 개인이나 가정의 일상적 소비지출로 이해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부금은 세금과 달라서 기부자의 애정이 서려 있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이 자신이 뜻한 대로 선한 일을 위해 쓰이기를 희망한다. 공동모금회는 이 점을 늘 명심하면서 대상사업을 공모에 의해 지원한다. 공모에 의한 선정은 언제나 전문가의 엄격한 심사가 따른다. 기부자와 수혜자 모두에게 정당성과 신뢰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다. 이것 또한 나눔을 촉진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도 우리는 늘 마음에 새긴다.
추석이 다가온다. 명절에는 양지와 음지의 그늘이 더 짙게 마련이다. 주변의 그늘진 곳을 살펴보자. 나눔의 문화가 왜 절실한지를 확인하는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추석이 나눔의 문화를 우리 모두의 생활 속에 자리 잡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이명기 강원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