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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NEWS+]춘천 지암리 복지시설 `나눔의 동산'

◇춘천 사북면 지암리 '나눔의 동산'에서 생활하는 한 아이가 방문객들을 비눗방울에 담으며 반기는 모습이 천진난만하기만하다. 김명섭기자

- “후원 확 줄어 먹는 문제가 가장 걱정”

 가는 곳마다 명절분위기로 넘쳐나는 요즘이 더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명절이면 으레 귀성전쟁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귀소본능이 강한 우리 민족이지만 갈수록 개인생활이 중시되는 오늘날에는 이것도 남의 말이 돼 버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40% 이상이 개인생활 및 경제적인 이유로 이번 추석에 고향방문을 하지 않겠다고 답한 것도 이러한 추세와 무관치 않다.

반면 추석을 앞두고 이제는 우리 사회현실을 표현하는 대표적 단어가 돼버린 양극화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연고가 없거나 있어도 여러 사정으로 만날 수 없는 이들이 생활하는 복지시설 사람들이다. 추석을 앞두고 44명의 장애인, 노인, 아동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을 키워가고 있는 복합복지시설 '나눔의 동산'을 찾았다.

나눔의 동산(원장:김재숙)은 춘천시내에서 자동차로 30여분 떨어진 사북면 지암리의 호젓한 마을가에 위치해 있다. 한낮임에도 마을에는 벼를 말리는 농부 몇 명과 훈련을 나온 군인들 말고는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나눔의 동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와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들과 한눈에 나이를 분간하기 힘든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앞 마당에서 한데 어울려 떠들고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임에도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대하는 이곳 생활인과 관리 선생님들의 모습에는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찾아오느라 복잡해진 지난 잠시간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어버리는 무엇이 있었다.

 여성들만 생활하는 '나눔의 동산'에는 연고가 없는 정신지체장애인 21명, 노인 11명, 아동 12명이 생활하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100세 가까운 할머니가 함께 돕고 의지하며 생활하는 대가족이다.

 아동과 정신지체장애인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두 눈에 연신 초승달을 만들며 떠들고 있지만 숙소 한곳에 모여 있는 노인들의 무표정한 모습은 이와는 대조적이었다.

 대식구답게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곳이지만 추석을 맞는 요즘 노인들의 얼굴에서 쓸쓸함의 기색이 엿보인다는 게 옆에서 이들을 도우며 생활하고 있는 관리선생님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이곳에서 가장 어른인 조보배(97)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 별지장이 없을 만큼 정정했다. 조할머니는 식사 때마다 언덕 중턱에 있는 식당까지 주위의 도움을 받아 손수 올라갈 정도로 의욕적이지만 역시 추석을 맞는 쓸쓸함은 감출 수가 없다.

 “이도 다빠진 늙은 노인네 사진은 뭐하러 찍으려구 그러는지 몰라”라고 말하면서도 한껏 미소를 짓는 모습 한편엔 그리움이 가득 스친다. 이곳 생활 13년째인 조할머니는 연고가 없는 무의탁노인. 이곳 44명의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한가족 처럼 살고 있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듯 처음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는 사람들이 한없이 반갑고 고맙다고 했다.

마당에는 한달전 이곳으로 온 채린(7)이와 57년생이지만 정신연령은 4살 수준인 영이씨가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서로 자기가 불겠다고 말싸움을 하고 있다. 이런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던 김재숙원장은 “2~3년 전부터 복지시설에 대한 후원의 손길이 줄었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이해하고 있었다.

 김원장은 “예전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복시시설도 위문과 후원을 위해 방문해주는 사람들이 늘어 나름대로 명절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런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오늘은 몇 곳에서 후원이 들어왔다”는 김원장은 “대식구가 생활하는 만큼 하루 식사로만 쌀 20㎏ 이상이 소요된다”며 먹는 문제가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추석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 송편을 만들며 전을 부칠 예정이라는 김원장은 “노인들은 명절에 전을 부치지 않으면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며 싫어한다”고 귀띔했다.

 추석을 맞는 '나눔의 동산'이 당면한 문제는 경제적 문제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정부가 복지시설 생활자들의 안전사고 등의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하고 있는 복지시설의 신고전환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조치에 따라 내년부터는 이곳 '나눔의 동산' 처럼 장애인 노인 아동이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복합복지시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에 따라 김원장은 지난해 장애인복지시설로 이미 신고전환을 마쳤다. 시설기준에 맞추다 보니 44명이 생활하고 있음에도 정원 30명 시설로 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12명의 아동들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하지만 여러 제약이 따라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춘천시에서 여러 방면으로 해결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최악의 상황에는 이들이 각기 다른 인가시설로 흩어지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김원장은 “이곳은 지난 15년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가족처럼 아끼고 생활하고 싶어 만든 공간”이라며 “소외된 이들이 모여 어렵게 한가족을 이뤘는데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서산으로 고개를 틀 무렵 관리선생님들은 대식구의 식사를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마당 한쪽에 놓인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이 힘겹게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 나눔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인생의 계좌에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수입의 항목에 기록하고 무엇인가를 받았다면 지출의 항목에 기입하라.”

 오래전 기억도 희미한 책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다. “지금 나의 대차대조표는 과연 플러스일까?” 고민이 깊어지는 하루였다. 이성현기자 sunny@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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