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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르포-DMZ와 500m 민통선마을 철원군 생창리]새벽4시30분 초소앞 수십명 농민 긴 줄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정상회담 성사로 긴장과 통제가 일상이던 전방지역 주민들이 평화분위기 조성을 반기고 있다. 북한 땅과 인접한 최전방 마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서 한 주민이 민통선 내에 있는 논과 밭을 둘러보고 있다. 철원 생창리=박승선기자

신원확인 끝마쳐야 논밭 출입

대남방송 멈춰 조용해진 마을

푸른 논과 비닐하우스 북쪽엔

오성산 정상 나부끼는 인공기

반세기 넘도록 각종 규제 묶여

옛 군청소재지 영화 재현 기대

DMZ(비무장지대)를 포함한 민간인출입통제선의 최초 명칭은 '귀농선(歸農線)'이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거주할 수 없고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다. 민통선이라는 표현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9년 6월 국군이 DMZ 방어임무를 담당하면서부터다. 남과 북의 창끝이 마주한 긴장과 대립의 공간에도 황금 들녘은 우리 삶의 근간이었다.

지난달 29일 오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민통선 검문소 앞. 주민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탄 트럭이 쉴 새 없이 민통선 남북을 오갔다. 이들은 모두 민통선 영농인으로 등록돼 신원 확인 후 통행할 수 있었다. 마을은 모내기를 마친 푸른 논과 비닐하우스가 전부로 여느 농촌마을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실감하게 된다. 검문소에서 불과 500m 거리에는 DMZ의 출입을 통제하는 통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정면에 있는 오성산(1,062m) 정상에는 북한군의 OP와 인공기가 뚜렷하게 보였다. 맞은 편 봉우리 정상에는 우리 군의 OP가 마주하고 있다. 오성산은 6·25 당시 저격능선이라 불리던 곳으로 정전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6·25전쟁의 참상을 담은 영화 '고지전'의 실제 배경이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오성산을 두고 마주한 남북한의 확성기에서 밤낮없이 선전방송이 울렸다. 민통선 내에서 들깨 농사를 짓는 윤성명(73)씨는 “몇 달 전만 해도 북한의 대남방송이 귓가에 울려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였다”며 “마을이 조용해진 것에서 평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생창리는 DMZ와 불과 500m 떨어진 민통선 마을이지만 분단 전에는 김화군의 군청 소재지였다. 철원~내금강을 오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철도인 금강산철도가 통과하면서 영화를 누리던 곳이다. 분단 이후 반세기 넘도록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었으나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생창리의 하루는 새벽 4시30분에 시작된다. 민통선 내 농지로 들어가는 검문소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생창리 주민 230여명 중 민통선 농사를 짓는 50여명이 새벽같이 초소 앞에 줄을 서 체증(?)이 빚어지기도 한다.

마침 이날 마을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인하대 경영학과 학생 23명이 농촌봉사활동을 왔다. 학생들은 북한의 초소가 보이는 논에서 일하며 농촌생활과 평화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이 학교 구혜련(20·서울)양은 “북한이 멀고 무섭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북과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철원 생창리=최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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