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3,000만명 찾는 '스카이트리 타워'
지역 소상공인·예술가 만든 물건 판매
“모든 주민에 관광지 개발 혜택” 목표
유행 대신 향토사에 기원한 축제 주목
스미다가와강 '불꽃축제' 대표적 사례
“역사 기반 관광 쉽게 흔들리지 않아”
치열한 경쟁 끝에 최신식 대형 관광시설 유치가 확정되면 한국에서는 '시설 개장→지역 소득 창출'이라는 기대에 들뜬다. 관광지를 통해 지역경제를 어떻게 살릴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다. 이는 1~2년 단위로 담당자가 바뀌는 행정에만 기대할 수 없는 문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은 행정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10년, 20년 단위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갈 탄탄한 민간주도형 관광조직이 있다는 점이다.
도쿄 스미다구(墨田區)는 인구 27만명으로 도쿄도 23구 중 12번째 규모다. 스미다강을 낀 지역으로 춘천과 흡사했다. 스미다구관광협회는 1983년 창립돼 회원사수만 1,400여 곳(개인 및 주민회 포함), 직원 수 53명이다. 2009년까지 지자체 보조금 위주로 운영됐지만 스카이트리 타워(높이 634m) 유치가 확정되고 2012년 개장하면서 '위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스카이트리와 연계된 수익사업으로 '재정적 자립'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지난해 정부에 지역관광경영조직(Destination Marketing Organization·DMO) 등록을 한 것이다. 회원사를 넘어 지역 전체를 위한 관광전략을 민간이 수립한다는 의지였다. 한국에서는 무모함 내지는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여겨질 혁신을 해 나가는 원동력은 주민들의 참여에 있었다.
■지역의 역사·정체성 담아낸 관광=지난 18일 오전 스미다구관광협회 이쿠코 모리야마 이사장은 가장 먼저 스미다구의 관광자원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30분간 이어진 설명은 단순한 관광지 소개가 아니라 향토사 강의였다. 모리야마 이사장은 스미다구의 유명한 다리인 료코쿠바시와 고토토이바시 등에 얽힌 역사와 설화, 에도 시대 문화유산을 소개했다. 오래된 기왓장, 유리·가죽공예, 메리야스, 성냥, 비누 공장과 소상공인들의 가게들은 명치 시대 이후 근대산업의 발상지였던 스미다구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구했을까' 싶은 1900년대 초기 주택가 지도와 현재 지도를 비교해 가며 관광지 구획을 설명했다.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구상하는 모습이었다. 협회는 지역을 전체 8개 구로 나눠 관광지로 개발 중이다. 최신식 스카이트리 타워 구역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프로스모 경기가 열리는 료고쿠(兩國) 국기관과 유명한 스미다가와강 불꽃축제도 역사에서 비롯됐다. 1923년 관동대지진,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사망한 수많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구청에서 파견 나온 타카시마 과장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불꽃축제 개최 여부를 두고 논란은 있었지만 축제 출발이 위령제였다는 의미를 알리면서 지속될 수 있었다”며 “역사를 기반으로 한 관광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공유한 스미다구 주민들은 무수한 축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구청과 관광협회가 주관하는 굵직한 7개 축제 외에 자생적인 주민 축제가 매년 1,000여개 개최 중이다.
■최신 관광지 핵심층의 기념품 매장=연간 관광객이 3,000만명인 스카이트리 타워 5층에는 '스미다구 주민들이 만든 물건'이 판매되고 있었다. 책, 컵, 비누, 인형 등 기념품부터 공예품, 염색공예 옷, 지역 식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과자까지 진열돼 있었다. 목공예협회 회원들은 번갈아 나와 관광객들에게 나무 조립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건 제품마다 이를 만든 영세 소상공인, 예술가들의 사진과 이름, 이야기가 담긴 표시판이었다.
마사시 나가노 부이사장은 “개별적으로 마케팅과 홍보를 할 수 없는 주민들에게 자기 제품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는 없으며 판매수익금의 20%를 협회에 내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었다. 판매소의 수익금은 스미다구관광협회에도 매우 중요한 재원이다. 협회의 지난해 수입액은 6억엔 정도로 이 중 회비 수입은 한 자릿수 정도이고 절반 이상이 '자주 및 위탁사업'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
협회뿐만 아니라 영세 소상공인, 장인들도 스카이트리 타워와 연계한 지역 관광상품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한국의 서예가와 유사하게 에도 시대 전통문자 전문가인 토모히로 오이시씨는 18일 일본 여행사 직원 20명을 초청해 에도문자 체험 관광상품을 소개 중이었다. 90분간 에도 시대 문자를 나무명찰, 부채, 조명등에 새기는 것으로 한자문화권이 아닌 외국인들도 겨냥하고 있었다. 오이시씨는 “스카이트리와 연계해 공방을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시작했고 연간 관광객이 1,000명 정도 온다”고 말했다. 본인과 같은 공예협회 소속 장인 50명이 소개된 팸플릿을 보여줬다. 스미다구에는 오래된 공방, 공장을 가진 장인들이 집에서 상품을 홍보하는 '작은 박물관'도 40여곳 운영 중이다. 또 제조 과정을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오픈 팩토리' 이벤트도 열리고 있다.
■관광을 통한 정주인구 확대=도쿄도 23구 중 정부의 DMO 등록 5대 요건(관계자 합의 형성, 연구개발기능, 자체 프로모션 성과, 조직구조, 운영자금)을 갖춰 등록을 마친 구는 스미다구가 유일하다. 특히 구청장은 지역관광 개발의 목표를 '관광객으로 하여금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에 뒀다. 이는 지역관광을 통한 지역창생이란 정부의 방향과도 맞아떨어졌다. 올 4월부터 파견된 타카시마 구청 과장은 자신을 '민관의 파이프라인'이라며 여러 부서를 이동했지만 주로 민간 협력 업무를 맡았다고 소개했다.
스미다구관광협회는 2012년 스카이트리 개장 당시 흑자를 냈고 이후 3년간 적자로 돌아섰다가 지난해에는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재정 경영과 더불어 수천명의 회원 간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모리야마 이사장은 “매일이 전쟁 같다”면서도 “정량적인 숫자 목표보다는 관광지 개발의 혜택이 모든 주민에게 돌아가는 것을 경영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관광의 풀뿌리 조직인 기초단치단체 단위의 관광협회는 이렇게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늘 새로운 것, 유행을 좇느라 잊혀버린 향토사,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관(官) 주도형인 우리의 지역개발 문화가 떠올랐다. 한국이 '제조업 대국 일본'을 따라잡는 데 30년 정도 걸렸다면 '관광대국 일본'을 따라잡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도쿄=신하림기자 peace@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