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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정칼럼]보이스피싱 예방법 '선의의 의심'

여동근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판사

검찰에서 시보(실무수습)를 할 때였다. 검찰에서 당사자를 소환하거나 간단한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고자 사건관계인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경우가 있다. 필자도 시보로 담당한 사건의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적지 않은 경우 “이거 보이스피싱이죠? 어디 사기를 치세요?”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려 상당히 애를 먹었다. 직책과 이름을 솔직하게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건은 쌓여 가고, 처리는 늦어지고, 그런 와중에 사기범으로 오해받고, 정말이지 답답하면서 억울한 노릇이었다.

판사로 임용돼 수년간 다수의 보이스피싱 사건을 접하고 난 지금, 이제는 시보의 전화를 매몰차게 끊던 사건관계자들의 반응이 이해된다. 아니, 과하지만 않다면 상대를 함부로 신뢰하지 않는 태도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사기방조'라는 죄명으로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대부분이 보이스피싱 사건일 정도로 보이스피싱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발하고 있으며, 그 수법도 점차 치밀해지고 있다.

검찰청이나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는 수법은 이제 진부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고금리 대출로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표적 삼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게 해주겠다면서 수수료 또는 기존 대출금 상환을 위한 현금을 준비해오게 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 피해자는 경제적 어려움과 원리금 상환의 압박 때문에 전후 상황을 차분히 따져볼 여력이 없다. 게다가 보이스피싱 사기범들 중에는 피해자들이 금융기관에 전화해 확인할 것에 대비해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를 미리 해킹해 자신들에게 전화를 돌려놓는 치밀한 자들까지 존재한다.

이러한 범행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준비해 온 현금을 수거해 보이스피싱 범죄 집단에 송금해줄 이른바 '수거책' 또는 '전달책'이 필요한데, 이들을 모집하는 과정조차 경제난에 처한 사람들의 심리적 빈틈을 노린다. 최근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는 채권 회수 아르바이트를 가장해 현금 회수 1회당 수십만원의 수수료를 약속하는 구직광고가 게시되는데, 대부분 보이스피싱 수거책을 모집하는 광고다. 단기간의 고수익에 현혹돼 해당 아르바이트에 응했다가 체포·구속돼 교도소 신세를 지는 사례가 강원도 내에서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의 마수에 빠져 수백~수천만원을 사기당하거나 보이스피싱 방조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구속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개인 모두가 보이스피싱에 대한 심리적 대비를 해둘 필요가 있겠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대환해 주겠다는 광고는 일단 의심하고 볼 필요가 있다. 은행이나 금융감독원 직원이라면서 현금을 요구하면 거의 100%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해야 한다.

한편 현금을 받아서 전달하는 것만으로 매회 수십만원 내지 일정 %의 수수료를 보장해 준다는 아르바이트 광고치고 범죄와 연결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대면면접 없이 전화나 문자, SNS로만 업무 지시를 하는 업체라면 십중팔구 보이스피싱 사기집단이다. 하다 못해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도 대면면접을 거친 후에 채용하는데, 수백만원을 수거하는 업무를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사람에게 맡기는 업체가 정상적인 회사일 리가 없다.

물론 신뢰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신뢰가 항상 미덕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선의의 의심'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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