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10월 17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다. 국제사회가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약속의 날이지만,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가난이 개인의 불운을 넘어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재난이 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과거와 같은 절대적 빈곤은 해소되었다는 세간의 평가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폐지를 줍는 노인, 불안정한 일자리와 빚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청년, 아이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N잡을 뛰는 부모까지. 이들의 고통은 결코 개인의 게으름이나 실패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날을 기념하며 사회복지정책이 과연 국민의 권리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사회안전망 유지를 위한 국가의 책임은 충분한지 물어야 한다.
정부는 매년 복지 예산 확대를 이야기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행정편의와 신청주의의 벽에 가로막혀 필요한 사람이 지원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현재의 방식은 때로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낙인이 되기도 한다. 시혜적 관점의 땜질식 처방으로는 더 이상 곪아 터진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모든 문제의 최전선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이들은 과도한 업무와 감정노동, 때로는 신변의 위협까지 감수하며 위태로운 이웃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의 헌신과 사명감에만 기댄 복지 시스템은 모래성과 같다. 이들의 소진은 곧 복지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직시해야 한다.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먼저, 국가의 책임을 예산으로 증명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GDP 대비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최소한 OECD 평균 수준까지 공공사회복지 예산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적 증액 계획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닌,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둘째, 예산 확보와 더불어, 낡은 제도의 틀을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간소화를 제시했지만,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부분적 개선이 아닌 완전한 폐지가 정답이다.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인 상병수당 제도의 조속한 도입이 시급하다. 질병이 빈곤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고리를 끊고, 생계 걱정 없이 누구나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급여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사회복지사의 안전과 처우 개선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복지 현장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삶을 지키는 이들의 노동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는 ‘사회복지사 단일임금체계’는 지방재정의 격차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권익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 또한 지자체의 예산 형편에 따라 인력과 재정 지원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면밀한 진단과 개선을 위한 꾸준한 민관협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기본이 튼튼한 사회'나 최근 화두인 '통합 돌봄' 역시 결국 사람의 헌신, 즉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정당한 노동 가치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현장과 학계, 행정과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 사회복지 전문가가 포진한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격변하는 사회, 위기에 놓인 어려운 국가적 상황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이다. 이를 위한 국가의 책무와 사회복지사들의 노력이 빈곤 철폐와 불평등 해소의 씨앗이 되길 간곡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