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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압록강 2,000리를 가다]⑩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국 단둥시 길림성의 한 새벽시장
조선족 상인 최복순·김정애씨 하루

◇중국 단둥시 길림성의 한 새벽시장에서 옥시기묵과 옥시기국수를 파는 최복순씨.

중국 단둥시의 한 새벽시장.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장터 안은 이미 발걸음으로 가득 찬다. 국적도, 민족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 삶을 꾸려가는 이곳엔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상인들의 손맛이 오랜 시간 쌓여 있다. 그 중에서도 옥수수묵과 김치를 손수 만들며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조선족 여성들의 삶은 곧 시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매일 새벽 세 시, 조선족 상인 최복순(53) 씨는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시장 좌판에서 직접 만든 옥수수묵과 국수를 판매하기 위해서다. 그가 판매하는 ‘옥시기 묵’은 옥수수쌀을 불리고, 전분을 빼고, 다시 끓이고 식히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만 하는 작업이기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장에 나가지 못한다.

“묵을 만들려면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려요. 그래서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세 시엔 꼭 일어나요.” 말을 이어가면서도 그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국수를 재빨리 포장하며 좌판을 정돈한다. 새벽 6시, 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좌판 위엔 옥시기 국수와 묵이 차곡차곡 올라간다. “단골이 많아요. 보통 묵만 하루에 세 박스 정도 가져오는데, 오전 7시면 거의 다 팔려요. 다시 찾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장사를 계속하고 있죠.”

‘옥시기’는 옥수수의 강원도 사투리로, 중국 조선족 사회에선 이를 활용한 국수와 묵이 전통 음식으로 내려오고 있다. 최 씨가 만든 옥시기 묵은 간이 세지 않아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그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손님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으로 만든다”고 덧붙였다.

◇중국 단둥시 길림성의 한 새벽시장 풍경.

그의 좌판에는 한 가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묵을 사는 손님들에게 단호박 한 조각을 곁들이는 것이다. “이건 내가 직접 키운 호박이에요. 묵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서 늘 드리고 있어요.”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최복순씨만의 정이다. “그냥 묵만 먹어도 맛있지만 이왕 먹는 거면 더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드리는 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걸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기분이 좋잖아요.” 이런 정이 쌓여 있는 그의 좌판엔 인터뷰 중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 단둥시 길림성의 한 새벽시장에서 대를 이어 김치를 팔고 있는 김정애씨.

시장 한켠, 김치를 파는 조선족 상인 김정애(58) 씨 역시 오랜 세월 좌판을 지켜온 인물이다. “이 일은 원래 우리 엄마가 시작하셨어요. 벌써 서른 해가 넘었네요. 어릴 때부터 김치 담그는 걸 보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이어받았죠.” 좌판 위에는 배추김치, 오이김치, 도라지무침, 마늘쫑 장아찌 등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이 줄지어 놓였다. 김 씨는 손님이 다가오면 직접 맛을 설명하고 권한다. “이건 오늘 아침에 담근 김치예요. 아삭해서 밥이랑 먹기 좋죠.”

그에게 김치의 비법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간결했다. “비법은 없어요. 어머니 손맛이 곧 우리집 김치의 맛이죠.” 요란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 안엔 가족의 시간과 노동, 그리고 정체성이 응축돼 있었다.

조선족 여성들의 손맛은 단순한 장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대를 이어 쌓여온 노동의 기술이며, 낯선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온 방식이기도 하다. 단순한 좌판이 아닌 삶의 터전이자 기억의 공간. 새벽시장에서 마주한 이들의 하루는 그렇게 묵직한 온기로 빛나고 있었다. 중국 단둥시=홍예빈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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