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이 유배된 영월 청령포의 솔숲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강물이 세 면을 감싸고 절벽이 한 면을 막은 그 땅에서 열일곱 소년 왕은 한양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삼켰다. 그 이야기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스크린에 옮겨지면서 천만 관객의 가슴을 울렸다.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오며 영월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그 한류의 바람이 이번엔 영월의 먹거리에까지 닿았다. 지난 6일과 7일, 캐나다 밴쿠버 근교 랭리시에서 열린 ‘K-푸드 페스티벌''에 영월의 중소기업이 김치, 강냉이, 청국장, 곤드레 등 46개 품목을 들고 태평양을 건넜다. 결과는 완판이었다. 특히 김치가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았고, 바이어들은 행사 현장에서 즉시 추가 주문을 요청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영월을 세상에 알리는 동안, 영월의 작은 기업들이 그 길 위를 걸어 들어간 셈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어 오히려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영월은 지금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고장이다. 탄광이 문을 닫은 뒤 젊은이들은 떠났고, 지역 안에서조차 판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런 영월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을 울리고, 영월의 김치가 태평양 건너편에서 완판됐다. 가까이 있어 미처 몰랐던 가치를, 먼 곳의 눈이 먼저 알아본 것이다. ▼영월군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운 지금, 이 두 줄기 바람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힘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영화의 감동이 청령포를 찾는 발길로 이어지듯, 밴쿠버의 완판이 북미 유통망 안착으로 연계돼야 한다. BC 한인회, Sandol Enterprise와의 업무협약이 일회성 행사의 기억으로 남지 않으려면 후속 지원과 행정의 관심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단종의 이야기가 수백 년을 넘어 천만 관객과 만났듯, 영월의 김치도 태평양을 넘어 세계의 식탁 위에 오를 수 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영월의 어제를 세상에 알렸다면, 이제는 영월의 오늘이 스스로 길을 내야 할 때다.
